<오델로> - '데스데모나'를 죽인건 누구인가. 공책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한편인 <오델로>의 줄거리를 한줄로 요약해 볼까.

 

<사악한 부하 '이아고'의 간계로 인해, 순결한아내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의심하게 된 흑인(무어인) 장군오델로가 데스데모나를 살해한 후 진실을 알게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줄로 요약한 오델로의 줄거리는어쩐지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 인기 몰이를 하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확실히, 오델로는 다른 작품들-햄릿, 멕베스, 리어왕 등-과비교해 볼 때, 덜 거창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왕위 계승이나거대한 권력 쟁취를 위해 인생을 거는 인물도 없고, 인생이 뭔지, 운명이뭔지, 대체 무엇이 옳은지 진지하게 사색하는 인물도 없다. 영웅적인주인공들이 아니기에 그들의 고민 역시 그 깊이와 무게감이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의 그것과 비교해볼때 상대적으로 사소해보인다.

 

오델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의 욕망에 너무나 솔직하여 요즘말로 '찌질해'보일 지경이고, 자기 자신의 결함을 수시로, 무방비로 노출시키며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오델로>는 이러한 '미완'의인간들, '결함'의 인간들의 약점을 드러내고, 그 약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파괴시켜가는지를 그린 극이다. 숭고하거나장엄한 주제로만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델로>는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허약함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그것을극적으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방식으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 명작이다.

 

 

-데스데모나, 상함없는 영혼을 가진 여자.

<오델로>에 등장하는 온갖 허물 많고 세속적인인물군 속에 '데스데모나'라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오델로>라는 비극에서 유일하게자신의 인간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죄없이  희생당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데스데모나는 베니스의 귀족, 원로원 의원의 딸이다. 젊고아름답고 신분도 높으니 남부러울것 없는 처녀였다. 그런 그녀가 오델로 장군을 사랑하게 된다. 오델로는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정받는 무어인(흑인) 장군이다. 그러나곱게 자란 데스데모나와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내인 것은 분명하다. 작품 곳곳에 그의 피부색을문제 삼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온갖 전장을 누비며 살아온 세월동안 그는 꽤 거친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것같다. 그런데, 모자랄것 없는 데스데모나가 오델로를 열렬히사랑하게 된다.

 

어떤 계산도 들어가지 않은 진정한 사랑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눈을 속이며 몰래 오델로를 사랑했고, 급기야 아비의 허락도 없이 오델로와 결혼을 했다. <오델로>의 첫 장면은, 악당 이아고가 이 두 사람이 함께 밤을 보내고있다는 것을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에게 밀고하러 가는 데서 시작한다.

 

놀란 아버지는 오델로가 자신의 딸을 무력으로 납치했거나 속임수로 꾀어낸 거라고 여기며 분노하고 오델로에게 죄를 물으려고 할때, 오델로는 데스데모나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말을 한다.

 

"그녀는 제가 겪은 위험을 동정하여 저를 사랑했습니다. 저역시 그녀가 동정해 주는 어진 마음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뒤이어 나타난 데스데모나가, 진심으로 오델로를 사랑하기에 이미 결혼했다고 밝히자 그녀의 아버지는배신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그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모든 소란은 종식되지만, 오델로의 저 말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오델로는, 데스데모나가 자신을 동정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있다.동등한 관계로 당당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같지는 않다. 데스데모나의 직접 증언이 있은후에야 소란이 종식되는 이 장면을 볼 때, 확실히 오델로는 데스데모나에게 걸맞는 사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러모로 기우는 결혼이었지만, 그것이 가능했고 행복했던건, 오델로의 당당함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데스데모나의 적극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오델로가 의심을 시작하며 이유없이 화를 내고 전과 다르게 거칠게 대해도 자신의 선택을, 사랑을의심하지 않는다. 모욕감을 느낄법도 한 대우를 받고도, 오히려국사에 큰 일이 있어 마음이 어지러운 걸거라고 걱정하며 자신을 책망한다.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다른 건강한 데까지 아픈것처럼 느껴지는 법, 남자도 신처럼 완결무결하지는 않아. 신혼때처럼 마냥 애지중지해주리라기대했다면 내 지나친 욕심이겠지. 내 잘못이야. 전지에 동반할병사로는 내가 자격이 없었던것 같아. 괜히 마음 상해서 그를 험구하다니. 이제 알겠어. 내 잘못이야. 그이는죄가 없어."

 

참으로,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하는 거다, 알려주는여자 같다. 그러나, 오델로는 어떤가.

 

그녀를 향해 "내가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져도 좋다"고 외친 바로 직후, 이아고의 의미없는 질문 하나로도 모든 것이 무너지는 사람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이아고는 이 때 엄청난 거짓 정보를  흘리지도 않는다. 다만, 캐시오와 데스데모나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혼잣말처럼 "저건또 무슨 짓이지?" 중얼거렸을 뿐이고, 캐시오와데스데모나에 대해 "저 둘이 원래 서로 잘 아는 사이지요?"하는굉장히 당연한 질문을 했고, 그 뒤에 살짝 "아무것도아닙니다, 그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라고만 했을뿐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오델로는 집요하리만치 이아고에게 달려들어, 그가 말하지 않는것이 무엇인지를 캐묻고궁금해한다. 그런 오델로에게 천하의 악인 이아고가 하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옳은 말, 정말로 오델로가 꼭 들었어야만 하는 말이다.

"장군님. 질투를 경계하셔야합니다. 질투란 녹색눈의 괴물, 사람의 마음을 먹이삼아 즐기는 놈이죠. 아내의 부정을 알면서도 체념하고 아내에게 미련을 갖지 않는 남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서도 의심하고 의심하면서도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는 정말 일분 일초가 얼마나 저주스러운가요!"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고마워하고 그녀를 사랑하며 행복해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오델로의약점을 알고 있던 이아고는 마지막으로 오델로의 가장 불안한 부분을 헤집는다.

"부인은 왜 같은 나라 사람, 같은 피부색, 같은 문벌을 자랑하는 사내를 남편으로 고르지 않았을까요? 뭔가 이상하죠. 이러다 차차 정신을 차려 어느날  장군님의 얼굴을 자기나라 사람과 비교해보고, 혹시나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저는 그게 걱정이네요."

 

이아고는 오델로와의 이 짧은 대화 -그저, "정말그렇다고 생각해? 네가 아는게 진실이라고 생각해?"하는질문을 반복하는-,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오델로의 본성을끄집어 내는데 성공한다.

 

방금전까지도 사랑의 환희를 노래하던 오델로가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 분명 저녀석이 나보다 무언가 더 잘 알고 있는것 같은데"하며불안해하고, 이어서 "혹시 내 얼굴이 검고, 한량들의 우아한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또는 내 나이가 이미한창인 시기를 넘겼다해서" 그녀가 자신을 떠나게 될까봐 걱정하기 시작했으며, 그런 두려운 상상 속에서 그녀를 증오하고, 저주하며 그녀를 완전히소유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기에 이른다. 정말로, 아무일도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아고가 그의  약점을 건드려준것 뿐인데, 오델로가외치는 대사는 이렇다.

"아 저주스런 결혼이여, 아름다운 여자를 제것이라고입으로는 큰소리 치지만 마음속까지 내것으로 만들수는 없단말인가!"

 

이렇게 뜨겁고, 불안하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오델로 식의 사랑.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적인 태도. 그것은동서고금 막론하고 자존감 약한 사내들이 '사랑'이라는 눈에보이지 않는 어려운 관계로 들어와 불안할 때 보이는 흔한 풍경이다. 하여, 이 불안한 사내를 전적으로 믿고 사랑했던 데스데모나는, 남편의 세계인먼 타향, 낯선 전지에서 자신이 모든것을 버리고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의 손에 목졸려 죽임을 당한다. 첫날밤 사랑을 나누었던 그 홑이불 위에서.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오델로에게 말한다.

"저에게 죄가 있다면, 당신을 사랑한것 뿐입니다."

 

데스데모나의 목을 졸라 그녀의 숨을 끊은 것은 분명 오델로다.

그러나, 오델로에게 거짓말과 거짓증거를 건네서 오델로를 미치게 한 것은 이아고다.

그리고, 이아고의 악행에 날개를 달아준건 그의 아내이자 데스데모나의 여종인 에밀리어다. 이아고의 요구에 따라 에밀리어는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몰래 주워서 이아고에게  넘겼고, 이 손수건을 손에 넣은 이아고는그것을 자신의 악행의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하여 오델로의 의심에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데스데모나가 늘 소중하게 간직하던 손수건을 떨어뜨려서 이아고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를만든것은 묘하게도 오델로 자신이다.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하던 오델로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그를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오델로의 머리를 매어주려고 했고,이미 그녀를 불신하고 있던 오델로는 그녀의 친절을 거절하며 그 손을 쳐버렸다. 손수건은이 순간, 바닥에 떨어져 에밀리어에게로, 또 이아고에게로넘어간다. 오델로를 미치게 한, 아내의 부정의 증거가 되는 '손수건'은 오델로 자신이 내친것이다.

 

사랑과 불안, 증오와 욕망의 광증 속에서 오델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인 후, 한발 늦게 살인의 현장에 도착한 여종 에밀리어가 죽어가는 데스데모나에게 대체 누가 이런짓을 했느냐고 물을 때, 데스데모나는 죽어가면서도, 오델로에 대한 사랑을 접지 않는다.

 

"아무도 아니야. 내 자신이 한짓이야. 안녕.."

 

남편에게 목졸려 죽어가던 데스데모나의 이 마지막 대사를 보면, 세익스피어가 그녀를 무엇으로 그리려고했는지 확연해진다. 세익스피어는  <오델로>에서 '이아고'라는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악의 상징이 되는 인물과, 고귀함과 순수의 상징인 '데스데모나'를 양 극단에 배치한 후, 보통 사람, , '조금만 더 자신의 약점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면 고귀해질수도있었을 인물'인 오델로와 각종 허약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직조해, 그들모두가 이아고에게 영향받아 데스데모나를 죽이는 데에 일조하게하는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녀의 비극에 일부라도 그녀의 책임이 있다면, 사랑의 힘을 과신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그닥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몰랐던 순진한세계관을 탓해야 할까. 혹은 동정하고 시혜를 베푸는것 정도로 끝냈어야 할 부족한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고동등하게 사랑한 것이 죄가 될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극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으로 신의를 지키며 선한것들의 정당함을믿고 있는 것은 데스데모나 뿐이다. 그녀는 '상함없는 영혼'을 대변하고 있고, 그런 그녀가 '누구' '무엇'에 의해 파괴되어비극적 희생을 치르게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오델로>의주제일 것이다.

 

고귀한 사랑, 그것은 쉽게 얻을 수는 있어도 쉽게 지켜낼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숭고한 순수를 지향한다해도, 끊임없이 인간의 허약한 부분을공격하는 악한것들에게 틈을 내주었을 때, 인간이란  얼마나 무참하게 망가지며 그 자신이 악의 수행자가 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 <오델로>.

우리 모두가 '데스데모나'를 사랑할 수도, 죽일 수 있는 '오델로'임을자각하게 한다.

 

-세종, 문화공간, 9월호

 


오필리어, 비련(悲戀)과 비정(非情) 사이, 소녀의 비극 공책

 

오필리어,

비련(悲戀)과 비정(非情) 사이, 소녀의 비극

 

 

-비련의 이미지와비극적 존재감

 

<햄릿>에는두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던 '거트루드'가 왕의 여자였고 왕자의 어미였다면

흔히 '오필리어' '비련의여인'으로 회자된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그 애인의 손에 아버지를 잃고

정신을 놓아버린채 물속에 잠겨 생을마감한 아름다운 처녀 오필리어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로 미루어 볼때,그녀는 확실히 상처받고 파괴된 비극적 여인이다.

 

그래서인지 오랜세월 수많은 화가들이 

이 가련한 여인 '오필리어'에 관한 많은 작품들을 남겨왔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광기,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많은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 

'오필리어'라는 여자가 가진 비극성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강력한 영감을주기에 충분했던것 같다.

 

이처럼 비련의 상징, 상처받은 순수의 이미지로 박제화된 '오필리어' 

<햄릿> 극텍스트 안에서 다시 꼼꼼히 읽어내보자

실제로 그녀가 겪은비극은 무엇일까.

 

완성도 있는 극 속에서 제대로 그려진 '인물'은 결코 '이미지' '정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하고 행동하며 그 행동이 가져온 결과에영향받는 것, 그것이 '극적 인물'이다.

 

오필리어는 극적 인물이고

그 극은 의심할바 없는 최고의극작가에 의해 쓰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이 극에서 '오필리어'를 그저 

'남자들의 힘과 세계에 의해 가련하게 파괴된 순수의 상징'으로만 읽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은 

어쩐지 세익스피어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다.

 

'오필리어'는 대체 무엇을 선택했길래, 그토록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었을까.

 

 

-'의심', 그녀의 첫 선택


"No morebut so?"

정말 그것 뿐일까요?

 

1 3장에서, 유학을떠나는 오빠 레어티즈가 

여동생 오필리어에게 햄릿왕자와의 관계를 처음으로 언급한다.

 

"햄릿왕자가 네게 호의 같은 걸 보여오신 모양인데 

그건 다 한 때의 기분, 청춘의 혈기에 불과하다

일찍 피고 일찍 지는 이른봄의 제비꽃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향기, 일시적인 위안, 그것뿐이야."

 

"정말, 그것뿐일까요?"

 

햄릿을 경계하라는 오빠의경고에 오필리어의 첫 반응은 '반문'이다.

확신이 없어서 강력하게 거부하거나 오빠를 설득하려고 들지는 못하지만

햄릿의 진심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오빠의 경고를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마뜩찮기에,  

오필리어는 오빠의 경고 그대로 다시 되물으며 머뭇거리고 있다.

 

영악하지 못한 여동생에게던지는 레어티즈의 경고는 간단하다

햄릿은 왕자라는 신분 때문에 '사랑'은 쉽고 '결혼'은 까다로울것이니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감정에 몸을 맡겨 여인의 정조를 잃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정조'를 여인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는 사회적분위기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매우 강력한 이데올로기다

하물며 이 극이 쓰여진 시기의 사회적윤리를 생각할 때

레어티즈의 경고는 너무나 당연하고

그 경고를 받아들이는 오필리어 역시 특별할 것이 없어보인다

아직 오필리어의 비극은 시작되지 않은것 같다.

 

그러나 잠시 후 등장해

레어티즈보다 한결 더 단호하고 엄하게 햄릿과의 관계를 질책하며 다그치는 아버지 폴로니어스가 

'그의 말들을 믿느냐?'고 물었을 때오필리어는 아주 중요한 대답을 한다.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I do not know, my lord, what Ishould think.

 

오필리어 자신의 입으로 전하는 바에 따르면햄릿은 오필리어에게

'여러번, 진심을 다해, 신성한하늘에 대고 거짓없음을 맹세하며' 애정을 고백해왔다

오필리어는 햄릿의 그런 태도를 보며 사사로운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고

그 사랑 혹은 관계에 희망을 가지고 있던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사람의 말들을 믿느냐'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햄릿의 사랑에 희망과 호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필리어자신은 아직 햄릿의 진심을 '믿지' 않고 있었다.

 

오필리어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것 아닐까.

이후에 벌어진 일들, 그녀가 하는 선택들은 

단지 무력하고미성숙하여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햄릿의 진심을 의심하던 여자였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시험해보기를 '선택'할수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수표같은사랑을 현찰인줄 알고 받는다면 넌 철부지 어린애다

좀더 값비싸게 굴어라. 안그러면 내가 너로 인해 부끄러울것이야

(중략) 너도 이제 다 큰 처녀답게 몸가짐을 도도하게 하며 상대를 대해야 한다

(중략) 결론을 말하마

이제부터는 절대로 잠시라도 햄릿과 만나지마라. 이건 명령이다."

 

세상사에 닳고 닳은 노인, 셈과 거래에 능한 아버지가 딸에게내린 명령은 

단지 '햄릿과 만나지 마라'가 아니다

'비싸게 굴고, 상대를 읽으라'는명령이었다

다시 말해, 사랑이 아니라 게임을 하라는 조언이었고, 오필리어는 이 명령을 받아들였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아버지"

 

그녀는 햄릿이 자신에게 보내온 사랑의 편지를 

별다른 설명없이 햄릿에게 다시 되돌려보내고

만나자는 햄릿의 청을 거절한다.

 

'별이 빛나는지 의심하고, 태양이 움직이는지 의심하더라도 내 사랑은 의심하지 말아달라'고 고백하는 사내에게

'살아있는한 당신의 사람이 되고싶다'며 한없는 사랑을 고백해온 사내에게

오필리어의 거리두기는 참으로 단호해보인다.

 

햄릿을 사랑하지만, 어쩔수 없는 아버지의 명령 때문이었을까

정말로 그것때문이었다면

영문도 모른채 거절당해 상처받을 애인의마음을 헤아려 

자신의 진심과 처지를 전했을 법도 하건만

오필리어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그것은 사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라아버지의 '가치관'을 따른 것이다

햄릿이 그동안 자신에게 보여줬던 (그러나 증명할수도 확신할수도 없는) 그의 진심과 사랑을 믿는 대신,

아버지가 가르쳐준 '어른스럽고 현명한 세계'의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후에 보이는 오필리어의 태도는 

그녀가 정말로 햄릿을 사랑하는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 '사랑의 시험', 비극의 시작

 

21장에서

선왕의 유령을 만난 이후 거대한 분노와 혼란으로 실성한듯 고통스러워하는 햄릿이 

철저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오필리어를 찾아온다.

 

오필리어의 눈에 보이는 햄릿의 모습은 "창백한안색으로, 두 무릎을 와들와들 떨면서

소름끼치는 이야기를하기 위해 지옥에서 빠져나온 것같은 가련한 모습"이다

그러나, 오필리어는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햄릿을 보고도 

어떤 자발적인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한때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던 사람의 지독한 고통에 어떠한 감응도 하지 않고,

그저 당황한 채 아버지에게 상황을 알릴뿐이다.

 

그 후, 셈이 빠른 폴로니어스가 햄릿의 변화를 

자신의 딸에대한 상사병 때문이라고 오해한 다음부터 오필리어가 취하는 행동은 

더욱 더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31장에서 오필리어는 몰래 엿보고 있는 아버지와 국왕부부를 위해 

거짓으로 햄릿 앞에 나아가 그를 속이며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기도 한다

햄릿이 얼마나자신을 사랑하는지를 다른 '어른들'에게 증명받기 위해

'인생이란게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며 실의에 빠져있는 햄릿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과 '어른들'의 게임을 실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쯤 햄릿은 오필리어의 변화를 눈치챈것 같다.


3 1장에서 햄릿이 우연히 (사실은 폴로니어스에 미리 계획된 시험이었지만

기도서를 읽고 있는 오필리어를 봤을때

햄릿은 분명히 반가워한다

그러나 오필리어가그동안 받았던 선물을 되돌려 주며 

자기에 대한 사랑이 변했음을 확인하려하고 시험하려드는 태도를 보이자

곧바로 햄릿도 태도를 바꿔 그녀를 모욕한다.

 

그녀의 태도에서 폴로니어스다운 계략을 눈치챘기 때문일것이다

'수녀원으로가라'는 말 끝에 문득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폴로니어스가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오필리어는 천연덕스럽게 '그는 집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녀의 거짓 대답을 들은 햄릿은 그녀를 향해 더욱더 광기어린 폭언을 퍼붓는다.

 

일이 예상하던 바와 전혀 다르게 흐르고

사람들이 보는앞에서 햄릿에게 큰 모욕을 당한 오필리어는 

그제서야 자신이 "세상의 여인들 가운데 가장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며 슬퍼한다.

 

이전까지 한번도 '햄릿의 사랑을 잃을까봐' 걱정하거나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어린 아가씨 오필리어

심지어 방금전까지 아버지와 국왕부부를 위해 연기를 하고 거짓말을 하며 

햄릿의 감정을 시험하고 있던 오필리어는

 이상 햄릿에게 자신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비로서 자신이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고 슬퍼하는 것이다.



-사랑을, 아버지를, 정신을, 그리고목숨마저 다 잃은.

상대의 진심을 믿고, 자신의 진심으로 소통해야 하는 '사랑의 법칙' 대신

아버지가일러준 '거래와 게임의 법칙'을 따르려했던 오필리어는 

제일먼저 사랑을 잃었다.


처음부터 의심없이 햄릿의 사랑을 믿고 계산없이 사랑했다면,

그래서 그 두 연인이 깊고 강력한 신뢰와 사랑을 유지하는 관계가 되었더라면,  

어쩌면 오필리어는 햄릿의 폭풍같은 광기와 혼란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의미있는 동반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불행하게도 햄릿의 고통과 혼란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자처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사랑을 잃었다

그리고, 이미 잃어버렸으나 되찾고 싶었던 '사랑'의 손에 

현실을 지탱해주던 '아버지'마저잃는다.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던 두 세계가 격돌하고 갈등하다가 

두 세계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되자, 

오필리어는 더이상 스스로 현실을 통합하고 받아들일 수 없게되어 

온전한 정신을 잃고, 정신을 잃어버린 몸은 물 속에잠겨 숨도 잃어버리게 된다.

 

오필리어에게 일어난 비극은 

외부로부터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적인 비극인가

혹은 특정시대, 특별한 사건에 한정된 특수한 비극적 사건인가

그렇지 않다


오필리어의 비극에서

순수한 처녀의 짓밟힌 사랑의 슬픔보다는

온전히 자기것일 수 있었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모든 인간이 겪게되는 보편적인 비극을 읽게된다


그녀의 비참한 최후는 

자신의 '믿음', 즉 스스로 믿는 바를

스스로 믿어야할 바를 고집하고 지켜내며 통합하지 못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작가의 냉정한 경고가 아닐까.


 

-세종, 문화공간, 8월호


왕의 여자, 거트루드 공책

<왕의 여자, 거트루드 >


-존재냐 비존재냐, 그 본질적인 고뇌의 질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편인 '햄릿'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혹은 공연을 본적 없는 사람도 

저 유명한 대사-"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를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흔히,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번역으로 많이 알려진 저 대사는 

<햄릿> 3막1장에 나오는 햄릿의 유명한 독백이다. 

그리고 이 '3막 1장'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두 여자,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와 햄릿의 애인인  '오필리어'가 함께 등장해 

퍽 흥미로운 사건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햄릿이라는 작품이 굉장히 유명하다는 것만 알뿐,  

햄릿의 구체적인 줄거리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작품 전체를 한번 살펴보자.  



-거기, 대체 누구인가? 물으며 시작하는 극

-"Who's there?"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다. 

외국 유학중에 아버지(선왕)의 부음을 듣고 급히 귀국했으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흘린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어머니(거트루드)와 작은아버지의 결혼식을 봐야했다.


극의 시작은, 어둔밤 보초를 서던 파수병이 죽은 '선왕'의 유령을 보는데서 시작한다.


-"Who's there?"

"거기, 누구요?"


햄릿 작품의 첫 대사, '거기, 누구요?'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어두운 암흑 속, 

무언가 할말이 있는것 같은 선왕 유령을 본 파수병들은 

유령의 아들 햄릿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한다.  


아버지 선왕의 갑작스런 죽음도, 

어머니와 작은아버지의 재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햄릿은 선왕의 유령을 만나고, 

유령이라는 불가해한 존재로 인해 

어둠 속에 가려져있던 '끔찍한 진실'을 직면하게 된다.

 

선왕의 유령은 자신이 알려진바와 같이 

정원의 독사에게 물려 죽은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독살 당했음을 알리면서, 

아들 햄릿에게 자신의 모든것-생명, 국가, 아내-를 한꺼번에 빼앗아간 동생(현왕)에게 복수를 하라고 명령한다.


온 정신이 무너질듯 괴로워하는 햄릿은 선왕 유령에게 복수를 약속하고, 

그때부터 미친척하기 시작한다. 

광증을 보이는 햄릿을 걱정하는 어머니 거투르드, 

그리고 그런 햄릿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고 그를 없애려고 하는 

작은아버지이자 아버지가 된 현왕 클로디어스.

 

복수를 위해 광증으로 위장한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현왕의 반응을 보고 그의 죄를 확신하고, 

실제로 미칠것 같은 분노 속에서 어머니 거트루드를 몰아세우다가,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이게 된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오필리어의 아버지이자, 현왕의 측근인  

폴로니어스의 살해범이 되어버린 햄릿은 영국으로 추방당하고, 

현왕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햄릿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달라고 영국의 왕에게 부탁한다.  


한편, 변해버린 햄릿에게 상처받은 오필리어는 

햄릿의 손에 아버지마저 죽음을 당하자, 그 충격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왕의 계략에서 살아남아 홀로 본국으로 돌아온 햄릿은 이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햄릿이 살아 돌아오자 극도로 불안해진 왕은 두번째 계략을 실행한다.

여동생과 아비를 잃은 레어티즈의 분노를 이용해 결투의 장을 열고, 

독이 든 술과 독을 바른 칼로 햄릿을 처치하기로 한것이다.  


그러나, 독이 든 술은 왕비가 마시고, 

독검은 햄릿과 레어티즈 모두를 베었으며, 

햄릿은 마지막 힘을 다해 이 모든 음모와 계략을 주도한  클로디어스를 죽인다. 

그리고, 저 유명한 마지막 대사를 읊조리며 쓰러진다.


"The rest is silence."

"이제 남은 것은, 정적 뿐."



이 광풍같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두 여자가 있다.

하나는 햄릿의 어머니이며, 선왕의 여자였고, 현왕의 여자이기도 한 거트루드.

그리고, 햄릿의 애인이었으나 그에게 모욕당하고 아버지마저 잃은 후 죽음을 선택한 여자 오필리어이다. 


세익스피어 시대가 허용했던 여성의 사회적 지위 혹은 문화적 관습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러나, 고전이 된 모든 명작들은 언제나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고민과 갈등을 담고 있다. 

이 작품 <햄릿> 역시 그렇다. 


부정, 부당한 행위, 복수같은 강력한 담론이 지배하는 전체 극 속에서, 

거트루드와 오필리어라는 두 여자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고 나약해보일 수도 있지만, 

극이 집중 조명하지 않는 두 여인의 시간을 촘촘히 상상해 읽어가다보면,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주인공 햄릿의 고뇌만큼이나 

이 시대에 유효한 명작의 향기가 두 여인에게도 배어있다.



-'왕자'의 '어미'보다는 '왕'의 '여자'였던 여인


햄릿의 극중 나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여하간 햄릿은 '왕자'다. 

아직은 '왕'이 아닌, 아직은 '왕'이 되지 못한 사내. 

다시 말해 아직 '어른 남자'의 권력을 가지지 못한, 권력자의 '아들'이기만 할 뿐인 햄릿. 


그러나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는 어떤가. 

'왕자의 어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그것보다 더 분명하게 욕망하며 지켜낸 것은  

'왕의 여자'라는 정체성이다. 


자신을 그토록 극진히 사랑해준 선왕이 갑작스럽게 죽어 사라졌으나, 

그래서 더이상 '왕의 여자'일 수 없는 위기에 처했으나, 

아비를 잃고 혼란과 비탄에 빠진 왕자와는 달리, 

그녀는 그 다음 '왕'이 된 사내를 자신의 남자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왕은 바뀌어도, 그녀는 변함없이 왕의 여자다. 

자신의 그런 선택이 왕자 햄릿을 불편하게 한다해도 

아들의 비난쯤은 아직 뭘 모르는 어린애의 투정쯤으로 여기며 

당당히 왕의 여자로 사는 거트루드.


그녀의 첫 대사는 이런 내용이다. 


"햄릿, 이제 그만 얼굴 펴고 새 아버지를 향해 웃어라. 

네 아비는 이미 죽었고, 산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거야. 넌 왜 그렇게 유난을 떨지? "


시쳇말로, 쿨하다.

인생을 알만큼 알것 같은 여자, 거트루드.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와 어떤 관계로 엮여있든 간에, 

지금 현재 '죽은것과 산것' 혹은 

지금 현재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이다. 


아들 햄릿이 극 전체를 통해 고민하는 '존재냐 비존재냐'는 질문에 대해 

'어른 여자'인 거트루드는 일찌감치 자기만의 대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직은 왕이 되지 못한' 아들 햄릿이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법칙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살인까지 일어나는3막4장의 거트루드와 햄릿의 극한 갈등은 

이런 세계관의 갈등과 대립이다. 

그녀가 '왕의 여자'가 아니라 '왕자의 어미'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햄릿은

3막 4장에서 제 어미에 대한 애증의 분노와 혐오를 감추지 않는다. 


'대체 무슨 마귀에 홀렸기에 이렇게까지 망령을 부리느냐'고 화를 내고, 

'찬서리에 정욕을 식힐 나이의 여인이 뜨거운 정욕에 불탄다'며 비난을 시작하더니, 

그 표현의 강도를 높여 

'개기름이 푹 밴 더러운 땀투성이 이불 속에서 추악한 사음에 빠져 

추잡스럽기가 돼지같은 숙부와 시시덕거리는' 어미를 구체적으로 비난한다. 


아들의 폭언과 울부짖음에 괴로워하면서도 

'내가 뭘 어쨌다고 내게 이러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거트루드. 

폐부를 찌르는 폭언으로 어머니를 공격하던 햄릿은 결국 

끝내 자신의 정체성을 바꿀것 같지 않은 어머니 거트루드에게 

간절히, 그리고 너무나 구체적으로 애원한다.  


"숙부의 잠자리로 가지마요."

"오늘밤만 참아보세요."


끔찍한 모자간의 갈등, 

실수로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이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햄릿의 광적인 분노, 

심지어 선왕의 유령까지 등장해 거트루드를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것을 당부하는 

이 폭풍같은 3막4장의 끝에, 


거트루드는 비로소 '혼자' 방에 남아 '흐느낀다'. 



이 때 거트루드가 흘리는 눈물, 

누구한테 보이려고 흘리는 눈물이 아닌 

혼자만의 울음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그 울음은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 절망을 담은 울음일까.

 

이것은 3막 4장 이전까지 그녀가 했던 여러 선택들을 

어떤 의미로 읽고 무엇에 공감했는지에 따라 

매우 다른 깊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이다. 


혼자만의 방에서 비로소 꺼내놓는 거트루드의 흐느낌에서, 

요구받은 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고자 하는 

많은 여자들이 겪는 피곤과 절망의 순간을 본다. 


어느 시대에나 관습적으로 요구되는'어머니'의 삶. 

그 이상의 '여자'로 살고자하던 한 여자가 감수해야하는 

저 무참한 비난과 상실에 대해 오래 생각이 머물면, 

점점 그녀의 흐느낌에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거트루드의 흐느낌은 단지 '여성'의 문제를 떠나, 

요구받는 대로 살것인가 욕망하는 대로 살것인가를 결정하는 

한 인간이 겪는 고달픔에 대한 표현이다.


막강한 권력이 없는 지위에서 자신의 '욕망'을 선택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비난과 고난은 

세익스피어 시대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것 없고,  

자신의 '욕망'을 선택했기 때문에 울어야 하는 일이 

남자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여자들에게 좀 더 많이 일어나는 현실 역시 

세익스피어 시대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다.



-세종, 문화공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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