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깨진 독입니다.
나는 선량한 얼굴로 물 한바가지 들고 내게 오는 사람들이반갑지 않습니다.
그들은
깨진 독에 물붓기라는 허무한 노동 끝에 지칠것이고
그렇게 지쳐버린 후에야
내가 깨진 독이라는 걸 알아챌 것이며
이미 지쳐버렸기에 더이상 내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내 깨진탓을 하며 돌아섭니다.
저렇게 망가진 독인줄 내 몰랐네
배신이네, 아픔이네, 상처네 하며.
그렇다고 내가 무슨 엄청난 꿈을 꾸는것도 아닙니다.
깨진 독을 이어붙이는 것,
그것은 하늘의 일이지 사람의 일은 아닙니다.
나는 깨진 독입니다.
나는 그저,
나 깨어져 산산조각나있음을 알아보고
나 이미 오래전부터 깨어져있었다는것에 가슴 아파
눈물 흘려줄 사람을 기다립니다.
나는 깨진 독입니다.
내 곁을 지날때,
손베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2003년. 홈피에 썼던 글.
부끄럽다. 여전히, 아니, 더욱 산산조각나 있어서.
깨어진 조각들의 날카로운 면을 그저 좀 무디게 만든것이 다여서.
이제는 이렇게 당당히 내 결함을 말하기도 부끄러운 나이가 되어버려서.
덧글
영혼이 아름답다는 생각.
그리고..
"당신의 은총을 감추며 사십시오." - 준주성범
언젠가 저에게도 산디아노 순례 기회가 있겠죠?
다녀오거든 같이 막걸리 한잔 합시다..
난, 인생이 시지프스에게 내려진 형벌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